HOME > 학생한마당 > 서평
1학년 문학상 산문부분 (금상)

디스플레이

10202 김민정 10210 김은총 10216 윤정연 10224 주혜린

7시 40분, 조회까지 딱 20분이 남았다. 자기는 애매하다. 그렇다고 다른 일을 하기에도 여유 있는 시간은 아니다. 뭐하지? 영어단어 암기? 이러다가 나 서울대 가는 거 아닌가?

“카톡”
“여진아. 나 아침 뭐 먹지? 어제 저녁 안 먹어서 배고파 죽겠ㅋㅋㅋ”

반 친구의 카톡이 눈 뜨자마자 울린다…. 귀찮다. 그나저나 나도 밥을 저녁부터 안 먹었다. 저녁 식사를 아빠랑 같이 준비했는데 너무 한 상 가득 차려서인지, 식탁에 음식을 올릴 때 방에서 쉬고 있다가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가족들을 전부 깨우긴 미안하니까 간단하게만 먹어야지. 그리고 분명 아빠께서 일어나시면 한 소리 하실 테니까.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여진님. 아침 식사로 어제 장 보신 우유랑 달걀, 식빵을 이용해 프렌치토스트 어떠신가요? 원하신다면 레시피를 띄워드릴게요.”

냉장고에서 내 움직임을 인식하고 손잡이를 잡기도 전에 음성이 나왔다. 자기가 아침을 차려줄 것도 아니면서 뭐하러…. 라면도 못 끓이는 내가 프렌치토스트를 아침에 만들면 분명히 가족 모두가 일어날 텐데.
역시 기계는 기계. 그런데 우리 엄마, 아빠는 쟤를 엄청 좋아한다. 메뉴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깜빡하고 내버려 둬서 버리게 되는 음식이 없다고, 환경도 지키고 건강도 지키고…. 여기서 우리가 지킬 환경이 대체 어디 있다는 거야?
하여간, 무시하고 냉장고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꺼내 보니 커피 우유가 나왔다. 커피는 좋아하지만, 우유는 먹으면 배가 아픈데. 예전엔 우유가 종이팩에 담겨 판매되었다는데 그럼 지금의 우유병처럼 여러 번 쓸 수는 없었겠네. 근데 종이가 젖어 우유가 새면 어쩌려 그러지?
시간을 다시 확인하니 7시 43분…. 아 정말 시간 안 가네. 우유를 잠시 내려놓고 신발장 옆문을 열어서 요가 매트를 꺼냈다. 요즘 내가 틈만 나면 하는 내 취미. 과거에는 이 요가를 들판에서 다 같이 하기도 했다던데. 무슨 느낌이지…? 운동을 다 같이 하면 너무 찜찜할 것 같아.
딱 55분까지만 요가를 하다가 들어가야겠다.

“자, 그대로 호흡 유지하고 다리는 더 들어 올립니다.”

요가는 집중하면 할수록 마음이 편해진다. 날카로운 내 마음이 둥글어지고 모래처럼 부드러워져.

‘삐비빅’

54분에 설정해 놓은 타이머가 울린다. 벌써 들어가야 해?
책상에 앉아 코스터 위에 우유를 두고 커튼을 묶었다. 밝은 햇살이 몰려 들어오고 내 눈에 닿는다.

“… 기분 나빠.”

햇살은 나에겐 너무 모순적이다. 오존층이 다 파괴된 지금 햇살은 우리에게 위험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햇살에 많은 양의 자외선이 실려 오기 때문에, 자외선을 막기 위해 설계된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볕은 전혀 따뜻하지도 다정하지도 않다. 옛사람들은 따뜻하고 다정한 햇살을 느꼈겠지. 부러우면서도 짜증이 난다. 우유를 한 입 마시는데 아무래도 우유만으로는 부족한 기분이 든다.

“아, 그냥 토스트를 해 먹을까. 베이컨만 대충 구워서 하나만 먹을까?”

핸드폰에서 배달 앱 알림이 뜬다. 그새 내 말을 듣고 문을 연 토스트 가게들의 정보를 가져왔나 보다. 이건 좀 편하단 말이지. 오지랖도 안 떨고…. 이번에 이사한 집의 메인 디스플레이는 내 방에 있다. 책상 안에 들어 있을 때는 평평하지만 위로 올라오면 커브 형이 된다. 친구들에게 자랑했을 때 놀라는 걸 보니 신형인 거 같아서 더 마음에 든다. 아, 근데 디스플레이 버튼이 코스터 아래에 있다. 역시 이사한 집은 적응이 잘 안 된다. 원래 버튼은 왼쪽, 코스터는 항상 오른쪽에 있어야 편한데….
가끔 친구들이 이런 고정적인 성격을 다른 부분에서 발견하고는 피곤하지 않냐 묻던데…. 글쎄 이게 편한 거 아닌가? 자기들은 허구한 날 실수로 디스플레이 껐다면서 수업에서 나가면서….
코스터를 살짝 들어 버튼을 누르려다가 우유가 그대로 엎어 졌다.

“아, 이게 뭐야. 정말 짜증나네.”

손에 튀긴 우유부터 물티슈로 닦았다. 나는 우유 냄새가 정말 너무 싫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우유에 진짜로 젖은 건 내 손이 아니라 내 책상과 코스터였다. 행주를 가지고 방으로 걸어오다가 뛰었다. 왜냐하면, 정말로 우유에 젖는 건 코스터가 아니다. 바로 내 디스플레이. 신형이라 달달한 커피 냄새가 날 내 디스플레이. 방에 들어오니 이미 디스플레이는 우유를 뒤집어쓰고 책상 위로 올라와 있고, 저 망할 햇살은 젖은 디스플레이를 더 반짝이게 하고 있다.

“… 이게 다 냉장고가 우유 얘기를 꺼내서 그런 거야. 돌겠네! 나 수업은 어떻게 들어?”

서둘러 선생님께 사정을 설명해 드렸다. 답장이 왔는지 안 왔는지도 모른 채 행주로 우유를 빨리 닦았지만 계속 올라오는 이 우유 냄새가 날 웃기게 만든다.
망할 기계. 망할 음성 지원. 망할 디스플레이.

✱✱✱

디스플레이가 망가진 덕에 결국 조회는 하지 못하였다. 담임선생님께 겨우 사정했다. 담임께서는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라고 하셨다. 결국, 난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낸 태준이네 집으로 가려고 한다. 마침 태준이도 여분의 디스플레이가 있다고 하니 이번 학기는 대충 태준이 디스플레이를 쓰려고 한다.
밖에 한 번 나가려면 40분의 시간이 소요된다. 물론 씻는 건 제외하고 걸리는 시간이다. 먼저 자외선 차단제를 바른다. 과거에도 선크림을 바른다고 했는데 이 선크림은 차원이 다른 선크림이다. 그리고 방독면을 쓰고 온몸을 다 덮는 전신 슈트를 입고 고글을 끼면 끝이다. 과거에는 이렇지 않아도 됐다던데 지금 이러는 상황이 매우 짜증이 난다.
밖에 나가니 날씨가 매우 화창했다. 모든 집은 창문이 커튼으로 다 덮여있다. 밖에는 사람이 없다. 다들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밖에 나가지 않고 식재료부터 옷까지 모두 다 온라인으로 시킨다. 그래서 그런지 택배를 배달하는 드론이 매우 많이 날아다닌다. 평소에 생각한다는 그 자체가 싫었는데 몇 개월 만에 나가서 그런지 잡다한 생각이 든다.
지금은 할 수 없는 과거의 모습을 상상했다. 커튼을 묶고 창문을 활짝 열어 방 청소를 하면서 상쾌한 공기 냄새를 맡는 상상이나, 가벼운 옷차림을 하고 푸른 초원 위에 돗자리를 깔아서 가족들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하하 호호하는 상상을 했다. 단지 상상만 했는데도 입가에 웃음이 피식 나왔다. 지금은 할 수 없는 것들이기에 이런 상상들은 다 부질없게 느껴진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니 태준이네 집에 거의 도착했다. 영상통화는 자주 했었는데 실제로 얼굴을 보고 만나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기분이 매우 들떴다. 태준이랑 못했던 말들을 다 해야겠다.

✱✱✱

설레는 맘으로 태준이 집에 들어갔지만, 우리와 별반 다를 거 없는 환경에 무기력함과 실망을 느꼈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라 반가운 마음이 먼저여야 하는 지금 왜 자꾸 과거의 모습이 겹쳐져 보이는지 모르겠다.
태준이와 나는 어릴 때부터 매우 친한 사이였다. 부모님끼리 워낙 친하셔서 우리는 어쩔 수 없는 단짝이었다. 나는 워낙 말수도 없고 주변에 무신경한 성격 탓인지 나와 반대되는 태준이는 항상 나의 비교 대상이었다.
부모님의 비난 섞인 조언은 나의 신경을 건드리기 충분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처음부터 태준이가 맘에 들지 않았다. 나와 달리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천진난만한 그는 나에게 정말로 이상한 존재였다. 부러움 섞인 질투인지. 반대되는 그에게 느끼는 이상함인지….
하지만 항상 태준이 집에 올 때마다 나를 반기시는 포근한 할머니의 온화한 웃음과 고소한 쿠키 냄새는 언제나 좋았다. 태준이에 대한 나의 마음이 변화할 만큼 말이다.
내가 집에 놀러 갈 때마다 할머니께서는 우리에게 마치 동화 이야기처럼 옛날의 세상과 풍경에 대해 들려주셨다. 그걸 듣노라면 기분이 붕 뜨는 느낌이 들어 계속 할머니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부탁드렸다.
할머니와 나는 일종의 계약을 맺었다. 태준이와 잘 지내면 할머니께서는 더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부탁하셨다. 처음에는 의무적으로 태준이에게 잘 대해 주었는데, 그 아이 자체가 좋아지는 건지 그날의 분위기 때문이었는지 어느 순간부터 쌓여있던 미움은 사라지고 거의 해맑게 웃는 모습만 떠올랐다. 그렇게 우리는 몇 년간 우정을 쌓았다.
오랜만에 보는 태준이의 얼굴이었지만 마치 어제 본 듯 익숙했다. 절망적인 상황과는 동떨어진 듯한 그의 표정과 웃음은 내가 피식 웃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내가 집에 들어가자 할머니께서는 예전과 다름없는 온화한 미소를 띠고 나를 반겨주셨다. 하지만 예전과는 미묘하게 억지로 띈 듯한 웃음의 의미를 나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할머니가 해주신 음식을 먹고 난 후 난 마치 어린아이처럼 할머니에게 예전처럼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부탁드렸다. 산들바람, 풀의 내음, 사람들의 일상 같은 이야기를 듣다 보면 마치 내가 그곳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이야기를 들으며 상상하던 그 순간 내가 그곳에 있는 것이다. 말로만 듣던 그 미지의 공간에 내가 서 있다. 머릿속으로만 떠올리던 것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버스 타고 출근하는 바쁜 직장인들의 모습, 아이들의 뛰노는 모습, 나에게는 생소하지만 익숙한 듯한 풍경들이 순간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

“여진아, 바늘에 실 좀 꿰어줄래?”

할머니는 돋보기 너머로 바늘귀를 보고 있지만 침침한 눈이 도와주지 않았다. 난 할머니 곁에 다가가 한방에 실을 꿰고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할머니는 얼마 전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으시고 몸과 마음이 쇠약해지셨다. 2020년 코로나 19로 인해 할아버지를 잃고 외로운 마음을 아기 태준이가 사춘기 태준이가 될 때까지 잊고 지내셨다. 그러나 지금은 마음이 아프신 이유로 가장 행복했던 할아버지가 계시던 2020년에 머물러있다.
태준이와 나는 온라인 수업도 있지만 사실 할머니의 기억이 멈춘 날로 가기 위해 오늘 만났다. 태준이는 나날이 달라지시는 할머니의 모습에 마음 아파하며 나에게 SOS를 보낸 것이다. 사계절이 뚜렷하여 봄에는 꽃이 예쁘게 피고 가을이면 형형색색의 단풍이 색을 뽐내는 그 시절로…. 할아버지와 산책하던 성곽길의 신선한 공기를, 두 손 꼭 잡고 장을 보던 시장길의 정겨운 웃음을 할머니에게 찾아 드리기 위해 우리가 한마음이 되어야 하는 날이다.
태준이의 해맑은 웃음은 할머니를 꼭 빼닮았다. 손뜨개의 포근함을 좋아하시는 할머니의 빨간 스웨터가 오늘은 더욱 포근해 보였다. 같은 시간에 있지만 다른 시간에 가 계신 할머니의 2020년을 느끼게 해드리는 임무를 수행하는 우리는 야릇한 설렘에 소름이 돋았다.
할머니에게 북한이 고향인 할아버지와의 평양냉면 데이트는 SNS를 이용한 그 시절 맛집 탐방을 보여드렸다. 밖을 자유롭게 나갈 수 없는 지금은 느낄 수 없는 신선한 공기는 2020년산 공기를 구매하여 느낄 수 있게 해드렸다. 그 시간에 멈춰있는 할머니의 기억 소환을 위해 우리의 노력은 태준이의 얼굴에 미소를 짓게 하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내 입가의 미소는 그 아이와의 이심전심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한 발 더 다가선 내 마음의 움직임이었을까? 아침에 봤을 때 난
“내 단발머리 어울리니?”라고 물었다.

“넌 어떤 머리나 어울려.”

태준이의 무심한 대답에 내 마음은 살짝 움직였다.
그게 어느 쪽이든 말이다.

✱✱✱

사실 나는 단발머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에 단발로 자른 이유는 단지 두 사람의 반응을 보고 싶어서….
나에게 꿈같은 이야기를 해주시는 할머니에겐 선물, 나에게 이상한 느낌을 주는 태준이에게는 나도 이상한 기분을 느끼게 하고 싶어서…. 그런데 이상하지. 설렘을 받을수록, 꿈같은 이야기를 들을수록 꿈이 현실 같고 현실이 꿈 같아져. 할머니가 얘기해 주시는 과거가 내 꿈에 스며들었나? 아니면 내 꿈이 사실 과거인지도 몰라.
이런 기분을 느끼게 된 건 할머니께 맨 처음 지금이랑은 너무도 다른 역할을 했던 창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아마 그때부터 느낀 거 같아.
할머니가 해주신 에그타르트를 먹고 미수강한 수업이 있는지 거실에서 확인하고 있는데, 태준이가 할머니와 같이 방에서 나왔다.

“야, 아직도 수업 체크 하냐? 난 3시간 전에 다 했어. ㅋㅋㅋ”
“너네 반이랑 우리 반 국어 선생님 다른 거 몰라? 우리 선생님은 50분 풀수업 하신단 말이야. 모르면 제발 말을 걸지 마.”

사실은 저렇게 장난치며 보조개를 보여주는 게 너무 좋다. 나한텐 없는 부분이니까. 부럽지는 않은데 볼 때마다 꽤 기분이 좋다. 왠지 모르겠지만, 평소 같으면 이유 없는 기쁨이 조금 짜증 날 때도 있는데, 쟤는 늘 나한테 예외이다.

“그나저나 할머니, 에그타르트 정말 맛있어요! 저 2개 먹었는데도 2개 더 집어 먹었어요.”
“그래? 맛있었다니 다행이다. 태준이는 맛있게 먹었니?”
“할머니! 나는 6개 먹었어요.”

아직도 입 옆에 파이 가루가 묻어있는 채로 태준이가 웃었다. 멍청이.

“야, 김태준. 나 창문 쪽 디스플레이로 계정 바꿔주면 안 돼? 허리 아파.”
“안 될 건 없는데 귀찮아. 내일 해.”

정말 누가 봐도 귀찮아하는 얼굴로 얘기를 한다. 저 새끼가….
우리 대화를 웃으시며 보던 할머니께서 입을 떼시려는지 커피를 한 모금 드신다.

“할머니가 어렸을 때 살던 집에는 화장실에 창문이 있었어. 어떻게 창문이 있나 싶지? 그런데 그때는 집 화장실에 창문 있는 집이 반, 없는 집이 반이었단다. 할머니 가족은 그 창문을 좋아했단다. 왜냐하면, 음식을 만들고 난 뒤 환기도 잘 되게 해주고, 샤워하고 나서도 금방 습기가 사라지게 해줬거든. 그리고 아직도 이 할머니는 생각만 해도 커피 향이 느껴지는 기억이 있단다. 주말 아침, 스터디 카페라는 다 같이 공부하는 곳을 가기 전에 샤워하고 머리를 말리고 있었지. 드라이기에서는 따뜻한 바람이 나오는데 등 뒤의 창문에서는 시원한 바람이 등을 쓰다듬고, 부엌에 계신 엄마는 커피를 내리고 계셔서 커피 향이 얼굴을 감싼 적이 있어. 생각만 해도 부드러운 기억이지? 창문에서 들어오는 바람은 우리가 선풍기랑 드라이기 등에서 느끼는 바람과는 살짝 다르단다. 뭐라고 설명할까…. 살짝 아쉬운 바람이지 더 들어왔으면 좋을 때는 얄밉게 더 들어오지 않고, 바람 때문에 창문을 닫으려 하면 거세게 불어오거든.”
“바람 주제에 뭐 그렇게 제 마음대로예요?”

얘기 중간까지만 해도 보조개를 보이면서 잘 듣고 있던 태준이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할머니 말씀이 딱 끝날 때 들어오긴 했지만 그렇다고 어른 말을 끊는 건 짜증 난다. 그리고 갑자기 보조개를 보여주지 않는 것도….

“야, 김태준. 할머니 말씀하시는데 그렇게 말 끊지 마. 너도 너 마음대로면서 무슨….”

솔직히 그 보조개를 다시 보고 싶어서 괜히 한 말인데…. 난 말재주가 그다지 없지만, 숫기는 더 없어서 차마 다시 웃어달라는 말은 차마 할 수가 없어서 괜히 태준이를 비꼬았다. 미안.

“여진아. 태준이가 저러는 게 하루 이틀이니. 할머니는 오히려 태준이가 안 저러면 불안하단다. 하여간, 그때의 창문은 지금처럼 디스플레이도 아니었고, 그냥 단순히 유리창을 여닫는 것뿐이었단다. 열면 바람이 들어오고, 해가 떴는지 안 떴는지 확인을 할 수 있는, 지금의 뭐랄까… 아! 디스플레이 자연 체험 기능을 창문이 했단다.”
“할머니, 그럼 창문 밖으로 손을 내밀었어요? 바람을 맨손으로 만져보신 거예요?”

나는 할머니의 말씀이 너무 신기해서, 마치 우주비행사의 얘기를 듣는 것 같았다. 바람을 맨손으로 만지는 건 어떤 걸까? 차갑나? 간지러울까? 손이 어떻게 되어버릴지도 모르겠다.

“손으로만 만지는 게 아니야. 얼굴로, 머리카락으로, 내 두피로, 어깨로, 발가락 사이로 자기의 모든 몸으로 바람을 만질 수 있었지. 너네에겐 상상하기 힘들겠구나. 밖의 바람을 만져본 적이 없으니까.”

할머니는 안타깝다고 말씀하셨지만, 표정은 자기의 경험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셨는지 살짝 웃고 계셨다. 아마 태준이는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

“할머니, 그러면 비도 만져보셨어요? 가끔 하늘에서 내리는 물이요.”

태준이는 역시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자기가 궁금한 것을 생글생글 웃으며 질문뿐이었다. 저럴 때 보면 아이 같고 조금 귀엽기도 하다.
그런데 나는 이날부터 꿈속에서는 너무 행복하고, 꿈에서 깨기만 하면 온종일 의문에 싸여있는 그런 날들을 보냈다.

나는 그날 내가,
화장실의 그 작은 창문을 열고,
손으로 바람을 느끼고,
그 창문에 몸을 접어 넣고,
결국엔 그 창문에서 나와 비를 맞는
꿈을 꿨다.

바람을 어떻게 느꼈는지, 비를 어떻게 맞았는지는 꿈에서 깨면 전부 잊어버리고 내게 남는 건 행복한 기분이 아닌 이상한 이질감과 동경, 그리고 아직도 뭔지 알 수 없는 간지러운 기분이었다.

✱✱✱

늦은 저녁까지 난 온라인 강의를 들었다. 오늘따라 50분 수업과 추가 과제가 너무나도 많았다. 지친 몸을 일으켜 세우는데 어디선가 아주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겨왔다.

“여진아. 밥 먹어~.”

할머니는 다정하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매우 편안했다. 오늘의 저녁은 소갈비 찜이었다.

“야, 우리 할머니가 너 오랜만에 와서 신경 엄청 쓰셨어.”

정말 오랜만에 이런 화목한 저녁을 하는 느낌이다. 저녁을 다 먹고 할머니는 우리가 좋아하는 옛날 얘기를 해주셨다.

“이 할미는 매주 수요일마다 등산 가는 것을 좋아했단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올라가면 내 몸이 다시 젊어지는 기분이 들어. 그리고 나무 냄새, 그 냄새가 내 정신까지 맑게 해주었지. 그때가 너무 그리워. 산 공기가, 산바람이, 산 햇살이, 배낭을 지고 걷는 사람들이, 모두 너무 그립단다…….”

나는 조금 놀랐다. 할머니가 이렇게까지 옛날을 그리워할 줄은, 그리고 이렇게 아름다운 추억이 할머니의 마음 깊숙이 있었다는 것에….
태준이가 말했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했던 그런 이야기도 해주세요.”
“음…. 너희 할아버지와는 매 순간이 추억이었지. 그중에서 하나 뽑아보자. 너희 할아버지는 매우 로맨틱한 분이셨지. 할머니가 40대쯤이었을 거야. 너희 할아버지가 퇴근하시고 튤립을 사줬지 뭐니. 난 오늘 기념일도 아닌데 꽃을 왜 사 왔느냐고 물어봤지. 너희 할아버지는 튤립의 꽃말이 영원한 사랑의 고백이라고, 나한테 말 하고 싶은 꽃이라고 하면서 주더구나. 아주 로맨틱한 남자였지?”
“그러면 언제부터 이렇게 변했다고 생각되세요?”
“음, 이 할머니는 2020년부터 이렇게 되었다고 생각해. 2020년에는 재앙의 년도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사건 사고나 자연재해가 잦았었지. 새해부터 코로나라는 감염병이 생겨서 전 세계를 뒤집어놨지. 사람들은 마스크를 껴야 했지만, 갑자기 마스크의 수요가 증가하여 마스크를 사려고 줄을 길게 서서 기다려야 했지. 어떤 교회에서 집단으로 발병해서 코로나 확진자 수가 급격히 올라갔었고, 거의 일 년 반 동안 코로나에 시달렸어. 그 외에도 비가 엄청 많이 퍼붓는 일도 있었고, 태풍도 꽤 많이 불었었지. 지금 이러는 게 2020년도부터 시작된 것 같지 않니? 자, 얘기는 이제 그만 하고 자자. 잘 자라.”

2020년과 지금, 뭔가 비슷한 점이 있는 것 같다. 마스크. 나갈 때마다 얼굴에 무언가를 쓰는 게 비슷하다. 2020년도, 물론 코로나라는 바이러스 때문에 많이 힘들었겠지만, 지금보다는 덜 힘들었을 것 같다.
정말 할머니 말대로 2020년부터 이렇게 변해 온 것 같다. 나에게는 할머니가 간직한 것과 같은 아름다운 추억이 만들어질까……. 내가 꿈속에서 꾼 왠지 모를 이질감과 동경인 간지러운 꿈처럼…….

✱✱✱

할머니의 말씀을 듣고 내 마음속의 어떤 변화가 일어난 것은 사실이다. 무언가 마음속에서는 자유에 대한 갈망과 지금 상황에 대한 무기력함이 합쳐지면서 짜증을 유발했다. 벌써 태준이 집에 머문 것도 5일째다. 슬슬 우리 집에 고장 났던 디스플레이가 거의 고쳐졌다는 업체의 문자와 엄마의 걱정스러운 문자가 동시에 내게 왔다.
사실 이제 집이라는 개념은 거의 없어진 지 오래다. 그냥 내가 머무는 고정적인 공간 그 이상도 이하의 개념도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집이든 안의 풍경은 거의 비슷하다. 온통 기계들 천지다. 인간이 디딜 틈은 없다는 듯이 말이다. 이제는 우리가 기계를 이용하는 것인지 기계들 사이에 인간이 껴있는 것인지 헷갈린다. 마치 기계들의 섬에 이방인인 인간이 불청객인 듯 느껴진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노라면 나에게는 궁금증이 생겼다. 어떻게 그런 다양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을 수 있었는지. 현재 우리는 반복적인 삶을 살고 있다. 아무도 어떠한 발전을 기약하지도 기대하지도 않기 때문에 그저 지금 주어진 것에 적응하며 뿐이다.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지 않는다. 그저 순간순간 살아갈 뿐이다. 아무 느낌 없이 말이다. 어떨 때 보면 기계들이 더 인간 같기도 하다. 이제 인간이란 무엇일까 하는 개념에 혼동이 온다.
디스플레이가 내일이면 다 고쳐진다고 해서 오늘 마지막으로 태준이 집에서 수업을 듣고 내일 집에 갈 생각이다. 오늘 수업은 과거에 살았던 생물들을 배운다고 한다. 아무도 이 수업을 귀 기울여 듣지 않는다.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어차피 다시는 못 올 세상이라는 것을 알기에 대부분 학생은 관심이 없다.
이런 과거의 세상을 그리워하고 호기심 있어 하는 나는 지금 세상에서 이상한 사람 취급당한다. 다시 오지도 못할 멈춰있는 과거에 머물러있는 어리석은 아이라고…. 남들이 뭐라 하든 상관없다. 나는 그런 과거를 사랑한다.
수업을 다 듣고 핸드폰을 보니 엄마의 부재중 전화가 3통이나 와 있었다. 분명 빨리 오라는 재촉 전화가 틀림없었기에 난 조금 짜증이 났다. 나는 내일 출발해야 했기 때문에 짐을 주섬주섬 쌌다.
사실 짐이라고 할 것도 별로 없었다. 오직 짐이라고 할 거는 방독면과 자외선을 차단해주는 전신 슈트였다. 아침이 되고 나는 할머니와 태준이에게 인사를 하고 집을 나갈 준비를 하였다. 할머니와 태준이는 아쉬운 듯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오랜만에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다. 다시 이런 시간이 올까 하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
나의 그런 눈물과는 반대로 현실은 변함이 없었다. 오늘은 나를 옭아매는 슈트와 방독면을 집어 던지고 세상을 있는 대로 받아들이고 싶었다. 집에 도착하니 나를 반기는 엄마를 보고 반가운 마음과 다시 돌아온 것 같은 척박한 현실에 한숨이 새어 나왔다. 너무 피곤하다.

✱✱✱

나에게는 미지의 세계인 과거의 시간을 너무나도 의식한 건지, 잠들기 위해 눈을 감고 조금 뒤에 내가 2020년 즈음의 세상으로 보이는 곳에 놓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마 이것은 꿈인 듯하다.
나는 바다를 보고 산 공기를 마시며 이름 모를 어느 절에 앉은 채로 바람을 느끼고 있었다. 몇 번 꿈에서 마치 과거인 듯 창문 밖 세상을 느끼고 또 상상해본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현실처럼 재현된 과거의 세상을 체험하는 것은 분명 처음 있는 일이다.
멍하게 저 멀리 파도치는 바다를 바라보다가, 이렇게 마냥 앉아만 있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 것은 시간이 30분 정도 지난 후였다. 정말 꿈을 꾸는 것이 맞는지, 어쩌면 꿈을 살다 현실로 돌아온 것은 아닌지 헷갈릴 정도가 생생함이지만, 지금 이 순간은 놓쳐서는 안 될, 평소보다 조금 귀한 시간이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이 모든 이질적인 풍경들이 소름 끼치도록 익숙하다는 것이 가장 이상했다. 분명 나는 이런 세상을 살아본 적이 없고, 수업에서나 들어보던 세상에 뚝 떨어진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은데, 마치 이곳이 내 집인 것처럼 너무나도 익숙하다.
그런데 또 그 익숙함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았다. 직감이 그랬다. 반가워하면 안 될 익숙함이라고, 몸의 온 신경이 곤두세워진 채로 나에게 경고를 했다.
하지만 경계를 늦추면 안 된다는 직감을 외면하고 싶을 정도로, 처음 목격한 과거의 시간과 공간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조금만 걷다 보면, 아니 여기 가만히 앉아 기다리고 있기만 해도 말로만 듣던 ‘동물’이라는 생물체를 만나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현실 세계엔 이제 가상의 그래픽으로만 존재하는 식물들도 호흡하며 땅 위에 우뚝 서 있었다. 이미 역사의 한쪽으로 사라져 도외시되어 차마 부모님께 말씀드리지도 못했지만, 나는 공부라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싶을 정도로 동경하고 있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다. 이미 학문이라는 것은 다 사라졌고, 인간에게는 이미 완성된 사회를 유지하는 역할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내 앞으로 다람쥐가 지나간다. 온라인 수업에서 배웠던 정말 그 ‘생물’들이었다. 역사의 한 부분으로 동물과 식물에 대해 배우기는 하지만, 현실에서 사람들은 살아 움직이는 것에 대해서 극도로 두려움을 느낀다. 이제 그런 생물들은 모두 사라지고 없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살아 움직이는 ‘생물’은 인간뿐이다. 반은 인간, 반은 로봇으로 이루어진 세상이라고 보아도 과장이 아니다. 생명보다는 효율성과 체계성이 강조되는 세상이며, 실제로 그러한 가치들이 어느 정도 현실이 되었다.
내가 2020년의 시대에 동경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학문이 연구되던 마지막 시대이기 때문이다. 철학이나 문학처럼 AI가 답을 낼 수 없는 분야 이외의 모든 학문은 이미 사라졌고, 내가 공부하고 싶어 하는 의학은 제일 빨리 사라진 학문 중 하나였다. 실수를 저지를 수 있는 인간은 더 의사라는 직업에 어울리지 않았고, AI로 모두 대체되었다. 대체된 이후로 단 한 번의 의료사고도 일어난 적이 없기에 인간의 손에서 개발된 AI가 이러한 성과를 낸다는 것에 있어 인간들은 성취감을 느꼈고 기뻐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측량 가능해지고, 오차를 허용하지 않는, 자로 잰 듯한 사회가 되어가면 되어갈수록, 인간들은 자신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기준에 숨 막혀서 하고, 2000년대 초반의 풍경을 그리워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인간들은 되돌릴 수도 없고, 되돌리기엔 너무 늦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AI가 답을 낼 수 없는 분야는 분명히 존재했지만, 그런 분야 자체는 이미 인간에게 필요하지 않았고, 더이상 공부라는 것은 무의미한 것이 되어버렸다.

“여진아!”

꿈 너머로 메아리처럼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꿈을 깨고 싶지 않아 외면하고 싶었지만, 눈이 떠졌다. 다시 현실이다. 나를 깨운 엄마에게 일어나자마자 말했다.

“엄마, 나 배고파!”

잠에서 깨어난 우리 집은 현실이었지만 너무나도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꿈에서의 그 익숙함은 뭐였을까, 왜 현실이 더 멀게 느껴질까. 이런 생각들을 하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방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아직도 커피 우유 냄새가 진동하는 디스플레이 앞의 의자에 앉아 다시 꿈을 떠올렸다. 교육이라는 것은 남아 있고, 수업을 들을 수 있지만, 형식적인 과정일 뿐 나에게, 아니 지금 시대의 인간에게 주어진 처음이자 마지막 공부할 수 있는 기간이다.
아직도 생생하게 느껴지는 꿈의 시대로 돌아가서 공부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하다가 울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이미 ‘완성된’ 사회에서 나는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고, 이런 나의 괴로움은 죽는 날까지 계속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나를 덮쳐왔다.
이럴 때면 태준이의 깊은 보조개나 태준이 할머니의 옛날얘기처럼 나를 웃게 해주는 것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그마저도 내가 바라는 모든 것이 아니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없게 만든 과거의 사람들이 원망스럽다. AI를 만들고, 동물과 식물이 더 살아갈 수 없을 정도로 지구를 파괴하고, 이젠 어쩔 수 없다며 이것이 완성된 사회라고 체념하고 살아가는 지금의 어른들도 싫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어제의 꿈 같은 꿈을 꾸기를 기다리는 것밖에는 없을 것이다.
정말 아무것도 바꿀 수 있는 것이 없고,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건 가장 큰 좌절일 것이라고 장담한다. 2000년에 태어나 2020년을 바라보며 살아갔다면, 이러한 미래가 예견되었다는 걸 몰랐다면, 다양한 공부를 하며 세상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갈지 나의 역할을 정할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졌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과거의 사람들이 부럽고, 또 부럽다. 이러한 내 감정과는 상관없이, 과거의 사람들은 그때의 소중함을 몰랐고, 기회가 있음을 아는데도 걷어 차버렸다. 아주 시원하게, 축구공 차듯이 뻥 차버렸다.
축구공은 골문을 흔든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흔들고 있다. 이유 없이 맞아야 하는 이유를 도저히 모르겠다. 내 질문의 답까지도 AI가 답해줄 수 있을까? 내 질문에 답해 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건 인간이었으면 좋겠다.
바꿀 수 있는 게 없지 않다고, 어쩌면 되돌릴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살 수 있도록, 이 세상을 뚜벅뚜벅 걸어 나가게 해주는 인간이 나 말고 한 명쯤은 더 있을 거라고 믿고 싶다.
그렇지만 우선 디스플레이를 고치러 올 AI를 기다려야겠다. 이 지구 위에 디스플레이를 고칠 수 있는 인간은 단 한 명도 없으니까 말이다.